3편: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 뒷이야기, 반대를 무릅쓴 애민 정신

조선 왕조를 통틀어 가장 존경받는 성군을 꼽으라면 열에 아홉은 세종대왕을 말합니다. 그중에서도 훈민정음 창제는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화적 성취로 평가받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우는 "백성을 가엾게 여겨 글자를 만드셨다"는 한 줄의 문장 뒤에는, 당시 기득권층이었던 사대부들과의 목숨을 건 정치적 암투와 세종대왕의 처절한 고독이 숨겨져 있습니다. 오늘은 훈민정음 창제 과정의 치열했던 뒷이야기를 들여다봅니다.

많은 사람이 훈민정음이 집현전 학자들과의 공동 연구로 만들어졌다고 오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처음 실록을 깊이 읽어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 철저하게 비밀리에 진행한 '단독 프로젝트'에 가까웠습니다.

당시 조선의 주류 세력이었던 집현전 학자들은 철저한 사대주의와 성리학적 명분론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중화(명나라)의 글자인 한자를 두고 우리만의 글자를 만드는 것은 오랑캐나 하는 짓"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만약 세종이 처음부터 "백성들을 위한 새 글자를 만들겠으니 집현전에서 연구하라"고 명령했다면, 시작도 하기 전에 온 조정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세종은 눈병과 당뇨(소갈증) 등 온갖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자식들과 일부 가까운 종친들의 도움만 받아 밤마다 등잔 밑에서 글자를 연구했습니다.

제가 당시 세종대왕의 심정이 되어 상상해보니, 온몸이 무너져 내리는 고통 속에서도 글자 연구를 멈추지 않았던 그 집념이 얼마나 처절했을지 감히 짐작조차 가질 않습니다. 시력이 흐려져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백성들이 글을 몰라 억울한 일을 당하는 현실을 바꾸고 싶었던 것입니다.

1443년, 드디어 새 글자가 완성되어 세상에 공개되자 예상대로 조정은 발칵 뒤집혔습니다. 당대 최고의 석학이자 집현전 부제학이었던 최만리를 필두로 한 유학자들이 대거 상소를 올리며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그들의 반대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명나라에 대한 의리였지만, 본질은 달랐습니다. 글자(한자)라는 권력을 독점하고 있던 사대부들이, 백성들이 글을 깨우쳐 자신들의 특권 계층을 위협할까 봐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세종대왕의 진면목이 드러납니다. 세종은 평소 신하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토론을 즐기는 군주였지만, 이 문제만큼은 단호했습니다. 최만리를 비롯한 반대파 학자들을 향해 "너희가 설총의 이두는 찬성하면서, 백성을 편리하게 하려는 새 글자는 왜 반대하느냐? 너희가 음운(소리)의 이치를 아느냐?"라며 논리적으로 그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습니다. 심지어 말도 안 되는 억지 논리를 편 신하들을 의금부에 하옥시키는 강수를 두기까지 했습니다. 유교 국가에서 왕이 학자들을 글로써 완벽히 제압한 순간이었습니다.

3년 동안의 치열한 보완 작업과 반대파 설득 끝에, 1446년 마침내 '훈민정음'이 세상에 정식 반포되었습니다. 세종대왕은 백성들이 쉽게 배울 수 있도록 자음은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뜨고, 모음은 천·지·인(하늘, 땅, 사람)의 원리를 담아 단 28글자 안에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기적 같은 문자 시스템을 선물했습니다.

역사학자들은 훈민정음 창제를 단순한 문자 발명이 아니라, 기득권의 정보 독점을 깨부순 '지식의 민주화 사건'으로 평가합니다. 자신의 몸을 사르며 백성에게 눈을 떠주려 했던 왕의 외로운 투쟁.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의 천재성뿐만 아니라, 백성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거룩한 애민 정신이 낳은 위대한 유산입니다.

[3편 핵심 요약]

  • 훈민정음은 사대부들의 반대를 예상한 세종대왕이 철저히 비밀리에 단독으로 주도하여 창제한 글자입니다.

  • 최만리를 비롯한 집현전 학자들은 명나라에 대한 사대 명분과 권력 독점을 이유로 격렬히 반대했습니다.

  • 세종은 뛰어난 음운학적 지식과 단호한 태도로 이들을 설득·제압하여 1446년 훈민정음을 정식 반포했습니다.

[다음 편 예고]

성군 세종의 치세가 끝나고 향후 조선 왕실에는 다시 한번 피바람이 불어옵니다. 다음 편에서는 어린 조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세조의 '계유정난'과 그 뒤에서 권력을 설계한 칠삭둥이 '한명회'의 이야기를 다루겠습니다.

[소통의 시간]

신하들의 엄청난 반대와 시력 상실이라는 신체적 고통 속에서도 글자 창제를 포기하지 않은 세종대왕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진정한 리더십'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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